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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MOON JI HYEON

[SPECTRUM] 슬릭 인터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에 대하여

뮤지션 슬릭(SLEEQ) 인터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에 대하여.'

슬릭을 보면 어느 책에서 구절이 떠오른다. 혐오와 미움 범벅인 세상에서 아무도 해치지 않는 가사를 쓰는 사람. 모두가 선뜻 나서지 못한 위에 누구보다 먼저 발자국을 남긴 사람. 그의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에 닿고, 그의 발자국에 우리의 발걸음을 맞출 우린 서로의 용기가 된다. 슬릭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나은 길로, 더 그를 위한 길로, 더 많은 우리를 위한 길로 걸어가는 중이다.

 

Q. Mnet <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로 슬릭의 존재가 많은 이에게 각인됐다. 그 후로 어떻게 지내고 있나.

태어나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것저것 일도 많이 하고,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나를 궁금해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Q. 요즘 ‘카카오 프로젝트100’, <슬릭과 함께하는 하루 완전 채식>을 진행 중이다. 비건의 필요성도 알고, 해보고는 싶지만 시작하기가 힘들다. 실패할까 봐, 패배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비건을 망설이시는 분들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비건은 ‘죽을 때까지 고기를 먹지 않기’처럼 어떤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고. 내가 어떤 것을 먹을 것인가. 무얼 입을 것인가. 선택의 순간에 그 방향을 계속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실패하면 어떡하지?’란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비거니즘이 덜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Q. 요즘은 한창 비건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전부터 계속 여성과 소수자,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2017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을 받은 데에 이어 올해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선 ‘올해의 보이스상’을 받았다. 이렇게 음악이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슬릭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일단 너무 감사드린다. 영화계처럼 사회 이슈에 더 주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른 영역들에서 나를 알아봐 주시니 감사하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 <뱅크시>를 봤는데, 미술계에서는 미술계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 이슈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들이 있더라.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가요에서는 그런 목소리나 움직임이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음악계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Q. 슬릭이 사회이슈에 민감하다는 가사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발매된 앨범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노래들>의 ‘살아가고 싶어’의 가사, ‘살아남기 보다 살아가고 싶어’라는 가사가 울림이었다. ‘피해자’라는 단어에 집중하지 않고, 한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높여주었다.

그 앨범 취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리는 프로젝트였다. 곡 제의가 들어왔을 때 ‘시혜적으로 보이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생각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막연하게 그분들을 바라보는 것도 위험하고, 피해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 관심을 가져야 해.’ 이런 시혜적인 시선 자체로 접근하면 그 감정과 관심은 정말 빨리 소모된다고 생각했다.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해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했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겠다는 마음으로 가사를 썼다.


Q. ‘살아가고 싶어’는 다른 이의 입장에서 가사지만, 대부분 슬릭의 노래엔 ‘나’의 이야기가 많다. 분명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감정에 공감하게 되더라. 마치 마음을 옮겨 적은 듯했다. 서사가 탄탄한 가사를 쓰는 비결은 무엇일까.

내 가사를 좋아해 주신 분이 “가장 구체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이 맞는 말 같다. 일단 나는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이다. 관찰을 통해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세세한 것들,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가사에 쓴다. ‘사랑 노래를 써보자’라고 밖으로부터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접근하기보단 ‘이런 순간에 내가 사랑을 느꼈었지’라고 안에서부터 생각하고 접근하는 걸 더 선호한다.

Q. 안으로부터의 출발이라면 배척과 차별을 받은 경험도 녹아졌을 테다. 소수자, 약자, 동물권의 존재를 지우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을 대할 그들에게 화가 때가 많다. 그런데 슬릭을 보면 ‘이 분은 득도하셨나’ 싶더라. 미움이란 감정을 어떻게 덜어내는지 궁금하다.

비슷하게 내가 무언가를 미워했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되게 불행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미움이 어디서 출발했던 그 감정을 느끼는 나는 되게 불행했다. 물론 의지로 “나는 불행하지 않겠어. 이제부터 행복하겠어”라고 이겨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가사를 쓸 땐, 어떤 일들이 일어나서 되게 불행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떤 행동을 할 때는 행복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맥락은 연결 지어주면 되니까.

Q. 퀸 와사비와 함께한 ‘잘나가서 미안’에서 느껴졌다. “서로 미워하는 애들은 미워하게 둬. (중략) 그 시간에 차라리 덕질을 하겠어”라고 외치더라.

퀸 와사비와의 작업에선 와사비의 긍정적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다. 와사비가 행복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어필하고 있는데 내가 옆에서 울고 있으면 흥이 떨어질 거 같았다. 그럼 내 목소리로는 ‘그런 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서 그런 가사가 나왔다.

Q. 그렇다면 “그 시간에 차라리 덕질을 하겠다”라는 슬릭은 어디에 애정을 쏟고 있나.

요즘 드라마 <청춘기록>이 방영되고 있지 않나. 박소담 배우님의 완전 팬이라 본방사수하면서 열심히 덕질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을 기다린다. (웃음)


Q. 처음엔 온라인에서 슬릭의 ‘행복한 고구마’ 같은 모습들을 보고 때부터 낙천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음악을 듣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 불행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는 사람도 있지 않나. 상처가 곳에 굳은살이 배기까지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

만약 누군가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는다면, 여전히 나는 ‘많이 불행하고 조금 행복한 사람’이라 분류할 거 같다. 처음 우울감을 느꼈을 때는 너무 놀라고, 그것에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몰라 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두세 번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이제 그 우울함이 나를 핥고 지나가기까지 좀 참을 수 있게 됐다. 전에 느껴봤던 감정이고, 시간이 흐르면 끝날 수도 있다는 걸 경험했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Q. 신념이 굳고 가야 방향이 뚜렷한 사람들도 때로는 내가 옳다고 믿는 정의가 무너질 때마다 ‘내가 잘못된 건가?’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슬릭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일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다. 그 생각이 지혜로 작용하는 순간도 있지만 굉장한 불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내가 틀린 건가?’ 혹은 ‘옳고 그른 거 자체가 어느 순간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나?’ 의문이 들 땐 그냥 지나가길 바란다. 나의 삶이 크게 송두리째 조롱당한다거나 이럴 때도 그냥 내버려 둔다. 물론 상처도 많이 받고, 원망도 많이 한다. 내면에서 소란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만 그런 마음을 밖으로 표현할 때 정리를 할 줄 아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표현할 때보다 내가 지금 무언가에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표현할 때 스스로가 더 좋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져 그렇게 하려는 편이다.

Q. 예전 싱글 <MA GIRLS>의 “나는 너의 용기야”라는 가사에 ‘나처럼 용기 없는 이들을 오래전부터 대변해 주고 있었구나’하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를 대변하느라 슬릭이 받은 조롱과 상처에 미안해진다.

당시에 그 노래를 어떤 사명감으로 만들었다기보단 나 자신한테 해주고 싶은 말을 노래로 만들었다. 용기를 얻고 싶은데, 내가 외치면 나에게도 들리니까. 그 노래들이 많은 사람들한테 가닿으리란 확신은 없었다. 워낙 규모가 작은 음악을 만들었고, 지금처럼 많은 주목을 받았던 적도 없었으니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노래들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에게 노래들이 닿고 그들이 내게 감사하다고, 자기가 용기를 받았다 말해주면 오히려 내가 그 말들에 ‘내가 틀린 게 아니라고. 내가 잘하고 있구나’하고 다시 용기를 얻는다.


Q. 8월에 발매한 싱글 <걸어가> 앨범 아트워크가 인상 깊었다. 슬릭의 타투에서 영감받은 오브제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던데, 사진 찍을 보니 귀여운 타투가 많더라.

한 스무 개 정도 있으려나, 세는 건 포기했다.(웃음) 타투를 고를 때 기준은 ‘무조건 귀여워야 한다’다. 애매하게 귀여운지 아닌지 고민하게 되면 탈락이다. 무조건 보자마자 “헐 너무 귀여워!” 그런 것만 한다. 의미 있는 타투는 딱 하나 있다. 비건에 대한 것인데, ‘(숟갈, 젓가락, 칼 등) 식사 기호에서 이제 칼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잘라먹는 걸 먹지 않겠다고. 혹여 비거니즘을 포기하게 될까 봐 일단 새겼다. 이제 더 이상 무를 수 없게 됐다.

Q. 많은 타투 중에 제일 처음에 타투, 그리고 최근에 타투도 자랑해달라.

제일 처음에 한 타투는 월미도에서 판매하는 3천 원짜리 ‘매직볼’이다.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걸 보면서 ‘똑같은 공인데 어떻게 보면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하네?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직볼 위에 있는 ‘펭귄’이 제일 최근에 한 타투인데 정말 아무 의미도 없이 귀여워서 했다.

Q. 그림 위주로 새기는 이유가 있나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게 레터링 타투다. 왜냐면 언어는 의미가 분명해서 더 이상 떠올릴 게 없는 느낌이다. 그림들은 보면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데, 글자는 딱 그 의미가 정해져 있단 생각이 들어서 그림 위주로 하고 있다.


Q. 폴킴과 함께한 ‘미뤄’나 남메아리와 함께하는 밴드 ‘늦은 감은 있지만’ 노래들도 좋다. 힙합이 아닌 다른 장르까지도 스펙트럼이 넓은 같다.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장르는 무엇인가.

요새는 포크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듣는다. 어떻게 보면 나와 정서가 가장 닿아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은 쪽이 포크다. ‘김사월’과 ‘시와’도 엄청 좋아하고, 포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을방학’도 좋아한다. 밖으로 가시를 드러내는 장르도 매력이 있지만, 지금 좋아하는 건 내면의 고민을 풀어놓는 노래다.

Q. 랩도 그렇지만 보컬로서 슬릭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다음 앨범은 보컬 비중이 앨범이라고 들었다. 혹시 포크 장르인가?

아니다. 만드는 노래는 전혀 다르다.(웃음)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사람들이 나의 랩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나를 래퍼로 인식하고 있으니 대중에게 공개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랩 비중이 큰 노래를 으레 발매했다. 그런데 그간의 데모들을 모아보니 보컬 트랙도 생각보다 많더라. 정리해서 보여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준비하고 있다.

Q. 슬릭의 다른 모습이 기대된다. 지금껏 슬릭의 음악을 사랑해 준, 그리고 앞으로 사랑해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세상에 정말 많은 음악이 존재하고, 다 듣고 죽을 수도 없고 다 좋아할 수도 없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으로 인해 내게 도달하느라 일단 수고가 많았다고 말하고 싶다.(웃음) “이런 뮤지션도 있어야지”라는 말에 가장 힘을 받는다. “슬릭이 세상에서 제일 최고야"라는 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슬릭 같은 뮤지션도 있어야지”라는 말은 그 말 위에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내 노래를 들어주면 감사하겠다.

 

YOUTUBE 뮤지션 'SLEEQ' 인터뷰 영상




 

VISUAL SON YU MI

EDIT MOON JI HYEON

PHOTO  PARK YONG BIN

GRAPHIC LEE JAE HEE

FILM KIM MI AE

CHOI YU JIN

HAIR ZOLLY (OLLY)

MAKEUP HWANG SEUL GI (OLLY)

STYLE SON SU BIN

 

ⓒ PAX MAGAZINE의 콘텐츠의 권한은 PAX CREW와 PAX MAGAZINE에게 있습니다. 동의 없는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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